Hotel Villa Fontaine Grand Tokyo Roppongi
비즈니스 호텔의 조용한 반전, 호텔 빌라 퐁텐 그랜드 도쿄 롯폰기
Hotel Villa Fontaine Grand Tokyo, Roppongi 비즈니스 호텔의 조용한 반전
나이가 차 늦깎이로 만나기 시작한 도쿄의 첫인상은 다름 아닌 ‘비즈니스 호텔 풍경’이다. 세계적인 관광 도시이니 그러려니 하다가도 셀 수 없이 많은 호텔 수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궁금한 나머지 찾아보니 놀랍게도 일본 호텔 수요의 큰 축은 오랫동안 내국인이었다는 거다(2024). 내수가 강한 나라인 만큼 출장과 국내 여행 수요가 오랫동안 이를 받쳐 왔다고 한다. 최근에서야 도쿄에서는 외국인 숙박객이 절반을 넘어섰다고 한다(2026년 기준 56.2%). 그 외국인들 중 한 명, 저요.
도쿄의 호텔 풍경이 여행이 아닌 출장에서 비롯됐다는 건 무튼 흥미롭다. 많은 게 설명되니 말이다. 비즈니스 호텔이라는 형식도 1950년대 후반 일본 고도 성장기에 생겨났다고 하니 이를 빼고 도쿄를 논할 수 없구나 싶은 것. 도쿄 여행에서 호텔 선택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여느 때의 여행처럼 마음을 사로잡는 부티크 호텔이 많지 않고, 조금만 크고 좋다 싶으면 숙박비가 많이 비싸다. 걷고 또 걷고, 먹고 또 먹는 여행을 주로 하는 도쿄에서 호텔에 과연 얼마만큼의 돈과 시간을 할애할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떤 여행에서도 호텔은 늘 우선순위였는데 말이다.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약간 슬펐달까. 그런데도 왜 자꾸만 도쿄로 향했던 걸까? 도쿄의 마력에 빠져버리면 별 수 없다고 해두자(정말 별 수가 없다).
최근 3년간 세 번의 도쿄 여행 동안 긴자에서 두 곳의 호텔, 롯폰기에서 한 곳의 호텔을 경험했다. 긴자에서의 호텔과의 첫 만남은 ‘호텔 몬터레이 긴자’였다. 나름 탁월한 선택이었다. 부티크 호텔은 아니지만 부티크 호텔스러움을 갖고 있고, 체인이지만 도시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비즈니스 호텔이긴 하지만 결이 좀 달랐던 것.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이 연상되는 벽면의 포스터들, 오래된 조명과 은은한 조도, 우드톤의 예스러운 인테리어와 카페트의 빈티지스러운 문양까지. 벨에포크의 파리를 흉내 낸 듯한, 다소 어설프지만 귀여운 시도가 엿보이는 곳이었다. 실제로 몬터레이 호텔 그룹은 각 지점마다 오마주하는 도시가 있다고 한다. 긴자 지점은 바로 ‘파리’인 것! 덕분에 부티크 호텔에서 머문다는 느낌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었다고나 할까. 일종의 타협이자 발견이었다. 위치의 편리함과 긴자의 밤거리를 고요히 산책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더하고 나니 두 번의 연이은 선택은 어쩌면 당연했다. 탐색과 선택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었던 것도 플러스 요인. 호텔을 찾는 즐거움이 도쿄 여행에서만큼은 수고로움이 되다니. 인생, 예측불허다.
세 번째 도쿄 여행에서는 변화의 시도가 필요했다. 첫 3일 밤은 마치 관성처럼 호텔 몬터레이 긴자에 내어주었지만 마지막 3일 밤은 달라야 했다. 긴자를 벗어나 보기로 결정하고, 부티크 호텔스러움을 냉큼 포기했다. 대신, 관심이 갔던 동네 ‘롯폰기’에 집중해 보았다. 좋아하는 아자부다이힐즈가 걸어서 5분 이내이고, 히노키초 공원과 도쿄 미드타운에도 쉬이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모리빌딩에서 하는 팀랩 보더리스 전시도 예매해둔 터였으니 제격이었다. 그런데 롯폰기에도 호텔은 넘치도록 많은 거다. 긴자의 풍경과 다른 게 있다면 단독 건물의 호텔보다는 크나큰 비즈니스 타워에 입점해 있는 호텔이 많다는 것. 대사관과 고급 주거지가 인접해 있어 관광지인 긴자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열띤 탐색전에 몰입하다보니 ‘차이’를 감지하게 된 건 예상 못했던 재미였다. 긴자의 호텔들은 특유의 ‘오래된 분위기’를 갖고 있는 편인데 롯폰기의 호텔들은 분위기보다는 편리함과 규모를 갖고 있었다. 긴자의 거리는 그 자체가 ‘볼거리’이기 때문에 호텔은 거리로 나가기 위한 거점이다. 반면, 롯폰기는 비즈니스 구역에서 일을 마치고 들어가 쉬기 위한 곳인 듯하다. 긴자는 밖이 주인공, 롯폰기는 안이 주인공 같다고나 할까.
나만의 기준과 기대치에 약간의 변주를 줄 때 뜻밖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익숙한 구역을 벗어날 것, 비즈니스 호텔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살짝 걷어낼 것, 그리고 새로운 재미를 찾을 것. 명확한 근거가 없어도 세워둔 기준이 있다면 ‘직감’을 믿어볼 만하다는 것. 그리하여 선택한 롯폰기 호텔은 ‘호텔 빌라 퐁텐 그랜드 도쿄(이하, 빌라 퐁텐)’였다. 롯폰기역 부근은 엄청난 유동 인구와 유흥으로 떠들썩하지만 호텔이 있는 롯폰기잇초메 역 동네는 정반대였다. 그 어떤 도시에서도 구석지고 한갓진 곳을 찾아내는 내 본능은 롯폰기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역시, 경험으로부터 얻는 ‘감’은 배신하지 않는다.
택시를 타고 빌라 퐁텐 입구에 다다랐을 때부터 놀라움과 반전이 시작됐다. 호텔이 입점해 있는 대형 오피스 타워 이즈미 가든 전체가 호텔인 줄 알았는데, 단지 안의 5층 건물만 호텔이라는 것과 긴자에서는 본 적 없던 관대하고도 여유로운 공간의 규모가 첫 반전이었다. 난보쿠선 롯폰기잇초메역이 호텔에서 10초컷인 것도 반전. 바로 아래에 있다는 것인데 왜 몰랐는지 싶다가도 이게 웬 행운인가 싶었다. 앉을 곳이 넉넉한 로비 공간과 널찍한 복도 그리고 무려 거대한 식물로 가득한 중정까지 모든 게 예상 밖이었다. 약간의 촌스러움마저 너무나 반가웠다. 도쿄 여행을 앞두고 늘 체증처럼 걸림돌이었던 호텔에 대한 관점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여행에서 관점이 바뀌는 계기가 되는 순간을 만나는 건 늘 좋다. 관점을 바꾼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에서는 마음이 곧잘 말랑말랑해지긴 하지만.
룸 컨디션도 예상보다 좋았다. 더 편안한 침대와 캐리어 2개를 편히 펼칠 수 있는 넉넉한 공간, 그리고 제법 큰 욕조가 있는 욕실과 커다란 창문까지. 좋아하는 대만이나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할 때면 당연했던 것들인데 비슷한 예산으로 도쿄에서는 어려웠던 점들이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기대치를 조정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말끔히 사라졌다. 언젠가 다시 도쿄를 향하게 되면 빌라 퐁텐에 묵기로 여행메이트 남편과 무려 약속까지 했다. 이번엔 아쉽게도 여행하는 일정 중 도쿄필하모닉의 연주가 없었다. 만일 있었다면 최고의 코스가 되었을 것인데, 산토리홀이 무려 도보로 7분 거리인 거다. 게다가, 끝나고 나서는 쥐라 와인과 그에 어울리는 맛있는 요리를 먹으러 Gout de Jaune으로 향한다면 금상첨화. 산토리홀에서 길만 건너면 미식의 세계로 뛰어들 수 있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다시 도보 8분이다. 다음을 위한 예행 연습을 하듯 마음 속에 잘 그려두었다. 뿐만이 아니다. 햇살 좋은 날 아침 산책을 10여분 하다가 모닝 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카페 Common도 코스에 추가해야 한다. 두 번의 아침마다 향했고, 가벼운 아침 산책에 제격이었다. 동선을 짜보는 것, 호텔을 거점으로 삼아 동네를 조금 더 구석구석 들여다보며 탐색하는 것에 과연 지루함을 느낄 날이 올까?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빌라 퐁텐은 오히려 추구미와 콘셉트가 없는 게 매력이었다. 한마디로 묘사할 수 없는 곳이랄까. 로비 안쪽 숨겨진 공간은 코워킹 스페이스의 라운지 같다. 리셉션과 입출구가 있는 넓은 공간은 비스듬히 보면 오래된 고급 호텔 같기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기 전 좁은 복도에 들어서면 젊은 호텔 스러운 런드리룸과 벤딩머신룸이 있고 말이다. 벤딩머신에선 물과 음료와 맥주, 하이볼은 물론 컵라면도 살 수 있었다. 크나큰 두 개의 중정에서는 여유와 여백이 주는 안정감 같은 게 느껴졌다. 시선을 밖으로 끌어내 주니 중정 사이 복도를 걷는 게 마치 산책하는 것 같기도 했다. 코펜하겐 북부 훔레벡에 있는 루이지애나 미술관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통창이 나 있는 긴 복도를 걸어 다른 전시 공간으로 이동했었는데 마치 숲 길을 걷는 듯했던 아름다운 곳. 빌라 퐁텐에 머무는 동안 하루는 비가 내렸었는데 중정은 비가 내릴 때 가장 아름다웠다. 하늘색과 빗물과 조명빛이 만들어낸 색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무용한 공간이라 생각할 뻔했는데, 역시 비움은 무용이 아니었다. 비움은 유용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었다.
지난 여행의 날들 속에서 주로 호텔이 담당했던 건 ‘낭만’, ‘아름다움’ 또는 ‘고유함’이었다. 그 도시에서만 만날 수 있는 로컬 분위기 물씬 풍기는 호텔이어서 고유한 미가 있었다. 오래된 세월에 쌓아 올린 디자인과 감각으로 궁극의 미감을 만끽할 수 있었기에 아름다웠고 말이다. 타임머신을 탄 것만 같은 기분마저 느끼게끔 현실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니 낭만이 가득했다. 반면, 도쿄에서의 호텔은 지극히 실용적인 요소들에 집중했기에 기대를 조정해야만 했는데, 빌라 퐁텐 덕분에 다시 기대감을 갖게됐다고 하면 과장일까. 아니,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됐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개인적으로는 한줄기 희망을 본 셈이다. 그저 비즈니스 호텔만 가득한, 글로벌 체인 호텔은 너무 비싸기만 한 도시라고 치부하며 도쿄를 오해했었기 때문이다. 도쿄 하늘 어딘가를 향해 나직이 사과의 한마디를 읊조려야 할 것만 같다. 스미마셍, 도쿄!
빌라 퐁텐에서 아자부다이힐즈 쪽으로 5분 남짓 걷다 보면 도쿄 타워가 얼굴을 빼꼼히 내민다. 부러 가까이 가서 올려다보는 것보단 이렇게 만나는 게 왜인지 더 낭만 있더라. 옆에서 힐끔 바라보는 게 더 정겹기도 하고, 오며 가며 마주치다 결국엔 미소 한 번 주고 받게 되는 그런 사이가 된 것만 같아서.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마주쳤더니 어느새 정도 들었다. 도시의 거대한 조형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새삼 느꼈달까. 욕심부리지 않았더니 이런 풍경까지 선물로 받은 것만 같아 빌라 퐁텐이 더욱 사랑스럽게 여겨진다. 역시, 여행과 호텔이 나를 흔들지 않았을 리가 없다. 다시 만나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그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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